그렇다면 논술도 마찬가지다.
경쟁률이 60대 1이라면 붙는 사람이 비정상이요, 떨어지는 게 정상이다. (앞서 말했듯 좋고 나쁨을 떠나서 그러하다.) 이처럼 비정상적인 결과를 원한다면 그 과정도 비정상적이어야 한다.
정상적으로, 즉 남들 다 하는 것과 비슷한 정도의 노력과 방식으로 준비를 하면서 나만 비정상적인 결과(합격)를 바란다면 될 리가 없다.
일찍이 아인슈타인도 ‘남들과 똑같이 행동하면서 남들과 다른 결과를 바란다면 그건 미친 것’이라고 일갈한 바 있다.
그러니 논술이나 입시, 아니면 뭐든지 남다른 결과를 원한다면 뭔가는 남다른 면이 있어야 한다. 남다른 머리가 있든, 남다른 노력이 있든, 남다른 경험이 있든… 보통은 그런 남다름이 없기에 입시에서는 ‘남다른 시간’을 투입해서 남다른 결과를 내는 경우가 많다. 재수를 하거나 삼수를 하는 것이다.
6월 모평이 끝나고 나면 새삼스럽게 논술에 관심을 갖고 ‘지금부터 해도 논술로 대학에 갈 수 있을까요?’라며 묻는 이들이 으레 있다. 하지만 일찌감치 논술전형을 염두에 두고 짧게는 한 학기, 길게는 일 년 이상을 달려온 남들에 비해 여름방학부터 논술 시작해서 성과를 내고자 한다면 그야말로 더더욱 ‘남다른 점’이 있어야 한다. 예컨대 다음과 같은 것들이다.
첫째, 수학성적이 괜찮다면 논술도 빨리 성장할 가능성이 크다. 수학도 결국은 숫자로 표현된 논리적 해결 과정이다. 그러므로 수학을 잘 하는 학생들은 논술이 요구하는 논리적 정합성을 비교적 빨리 파악하는 경향이 있다.
다음으로는 국어 비문학 독해에 장점이 있는 경우이다. 현행 논술은 제시문(비문학 형태의 제시문이 다수)을 활용해 출제자가 물은 바에 답안을 만들어 가는 것이 기본이다. 그러니 제시문 독해력이 떨어진다면 총을 다룰 줄도 모른 채 총을 들고 전장에 나가는 셈이다. 아쉽게도 이러한 능력은 하루아침에 형성되지 않는다.
물론 논술에서 제시문은 그 자체의 이해를 넘어서 이들 간의 논리적 관계를 만들어 내는 것이 더욱 중요하지만, 그러기 위해서라도 독해력 자체가 기본으로 필요하다. 독해력에 남다른 자신이 있다면 지금 논술을 시작한다 해도 성공 가능성을 꽤 높일 수 있다.
둘 다 자신이 없다면 ‘자기 자신을 객관화하는 능력’이 남들에 비해 뛰어난지 묻고 싶다. 논술은 결국 답안지 한 장으로 내가 남에게 평가받는 과정이다. 그러므로 내가 머릿속으로 하는 생각이 과연 타인에게도 타당하게 받아들여질지, 내가 지금 쓰는 문장들이 남이 읽기에 이해할 만하고 설득력이 있는지 등을 끊임없이 객관적으로 검토하는 능력이 논술에서는 반드시 필요하다.
이는 단지 ‘열심히 한다’는 것과는 의미가 다르다. ‘의식적으로’ 자신의 생각과 글을 객관화하는 일은 생각보다 쉽지 않다. 이를 습관화하기 위해서는 물론 ‘열심’이 필요하지만, 객관화 능력이란 그러한 노력의 방향을 말하는 것이다.
“지금부터 시작해도 논술로 대학에 갈 수 있을까요?” 고 묻는 학생은 용기를 얻을 만한 혹은 위안이 될 만한 답을 기대했겠지만, 할 수 있는 답은 “그건 사람마다 다르다”뿐이다.
학생들은 일반적인 가능성을 묻지 말고, 자기 자신에게 ‘남다른 무엇’이 있는지, 그것이 앞서 말한 것들처럼 논술에 비추어 활용할 만한 것들인지를 고려해 논술전형의 가능성을 타진해 보는 것이 현명하다.